타인에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려해 본 적 없다. 옳다고 믿는 길을 가다 보면 누군가는 그것이 맞다고 말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나아가도 이정표는커녕 사람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못한 채로 새하얀 갈림길 앞에 서게 된다면, 누구에게나 옳은 길이라는 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누구의 손이든 붙잡고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이 고개를 들이민다. 그런데 지나쳐 온 길에 돌이킬 수 없게 죽은 인간이 산처럼 쌓여 있다. 인간의 내면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일관적이지 못하다. 모든 사람이 0과 1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불행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모든 인간의 머리가 회로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고에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었다면. 정확한 계산으로 도출된 결과값만 출력할 수 있는 존재였다면. 거기까지 가정하고 나니 역으로 뒤를 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랬다면 우리가 지금 이곳에 서 있는 일조차 없었을 테니까.